그게 젤 중요하죠..
모처럼 황학정에서 습사를 했다. 지난 여름 덥기도 많이 더웠고 아직 어린 아들을 Care하다보니 자주 활터에 나가지도 못하고 결국 습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한 4~5개월만에 사물함에 들어 있는 활을 꺼내니 활이 왜 이제 왔냐고 앙탈을 부릴줄 알았는데 심하게 삐졌는지 이전과 전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습사인지라 첫 순에 불을 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통은 바로 섰는데 대부분의 살이 과녁 위로 넘어갔다.써야할 힘을 안쓰고 비축을 해서 일까? 힘이 넘쳐난다.
다시 사대에 서서 배운 기억을 토대로 자세를 가다듬어 가며 습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서서히 시수가 올라오고 연 3중을 때리며 실력(?)이 서서히 발현되는 듯 했다. 마침 그 즈음에 1,3,5 2,4,6 으로 편사를 하자고 하니 항상 그렇듯이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초시가 관중이다. 초순을 쏠때 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깍지손의 탄성에 주목하며 활 시위를 놓았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거문고의 현을 당겼다 놓는 그런 느낌으로 쏜 것 같다. 당연히 줌손은 닭 모가지를 비트는 느낌으로 꽉 잡았다. 적절한 포물선을 그리며 홍심에 관중을 했다.
이시도 비슷한 포물선을 그리며 관중을 했다. 근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과녁에 맞는 소리가 꽈광이 아니라 약간 둔탁한 소리를 낸다. 아마도 또 살이 과녁을 넘을까봐 튕기는 느낌으로 쏘다 보니 관중 강도가 좀 약해진 그런 느낌이다. 어쨌든 또 관중이다.
몇대몇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듯 삼시도 관중을 해서 삼중이 되었다. 양팀이 다 막상막하라 편사의 재미가 더해지는 순간 나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또 하고 말았다.
나- '이러다가 모는 것 아냐?'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항상 3중을 하고 나면 이때 쯤 이런 생각이 들면서 몸에 약간 힘도 들어가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자주하는 몰기가 아니다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실제로 4중중에 막시가 빠진것이 70%정도 이고 사시가 빠진 것이 20~30% 되는 것 같다. 그때마다 다음에는 3중을 하더라도 잡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을 하건만 그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드는 것이 이런 잡생각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사시를 날렸다. 이전 관중살과 비교해서 약간 높다는 느낌이 덜 정도여서 어깨 힘이 덜 빠졌나 보다. '에구이번 살이 또 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때쯤 관중을 알리는 불빛에 정신이 번뜩 든다. 예상대로 과녁의 상단에 맞았다.
편사도 거의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막시를 들고 또 다시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있었다. 막시를 발시했다. 머리속은 비우고 아까 거문고 튕기는 그런 느낌으로 쏜 것 같다. 콰광 막시가 과녁을 때리면서 오랜만의 습사에서 몰기를 달성했다. 이 한 방으로 우리 팀이 8:7로 앞섰다.
이쯤 되면 우리가 이기는 분위기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상대편의 마지막 사수가 구부회 접장이다. 온통 나의 쏘임새에 몰입이 되어 있던지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구부회 접장도 이미 4중을 했고 중요한 한발이다. 그는 막시를 날렸다. 콰광!! 결과적으로 구부회 접장도 5시5중을 달성해서 8:8로 비기고 말았다. 편사에서 몰기도 쉽지 않은데 몰고도 이기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구접장님도 마찬가지겠지만~~)
서로 축하해주면서 사대를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원효의 해골물 같은 깨우침이 뇌리를 스친다. 결국 기술이나 비결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쏜 화살이 관중이 되고 안되고는 그 다음 문제이다. 5발의 화살을 똑 같은 쏘임새로 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활쏘기 실력의 핵심이다.
오늘 습사를 복기해보니 약간의 미동이 있을 순 있으나 오늘 쏜 5발의 화살은 쏘임새가 거의 일정했고 그 핵심은 깍지손의 압력이 적절할때 잘 튕긴것 같았다.
나중에 박사범님께 오늘 습사에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하며 조언을 구했다.
나: (진지하게) 쏘임새가 일정한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박사범님의 답변 : (별로 관심없다는듯 퉁명스럽게) 그게 젤 중요하죠.
나의 생각 : 그런데 가르칠때 국궁교실에서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왜 안 알려 줬을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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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생들은 지가 모르는 것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았고 배운적 없다고 끝까지 우긴다. 지금 생각해보니 지나가는 말로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