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궁(詩)/활터의 사계 (4)
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살 에는 추위에 옴짝달싹 사색(死色)이 되어 버린 과녁 위로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켜켜이 이불솜을 널었네. 온 몸을 싸고 매고 호호 손을 불면서 한 배 가득 당기고 놓으니 순간 멈춰버린 영원(永遠). 촉바람에 오색바람에 설 쏜 살이 간신히 굽통 쑤시니 소스라치게 놀란 과녁. 속절없이 이불솜만 주저 앉는다. 설자리 위 언발 줌통 잡은 곱은 손 이마 바로 선 높바람 목덜미를 파고드는 동장군의 엄포를 피해 급히 사우회관 속으로 몸을 숨긴다. ※ 시 해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새벽에 활터에 가면 밤새 쌓인 눈이 솜 이불 처럼 널려 있다. 새벽습사의 첫 화살에 홍심을 드러내는 놀이를 '눈털기'라고 했다. 신사 때 사범님과 함께 '눈털기'에 나섰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 ※ 용어해설 ☞ 굽통 쑤시다 : ..
아무때고 황학정(黃鶴亭)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여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과녁 삼형제 너머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가 버티고 감투바위 아래 젖은 풀잎사이로 돋보이는 꽃무릇에 윤이 난다. 활꾼의 시위가 차오르고 살(矢)이 한 배를 얻을 즈음 시수꾼의 옅은 미소가 과녁을 향해 번진다. 사우회관(射友會館) 유리창 속에 벌써 가을 활터가 걸려있다. [사진]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 [사진] 황학정 김진영 여무사님. ※ 시 해설 가을 하늘아래 활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황학정 사우회관(射友會館)에 서있는 필자를 기점으로 원경(遠景)에서 부터 점점 시각이 근경(近景)으로 [마천루-과녁-감투바위-설자리- 사우회관]옮겨 온다. ※ 용어해설 ☞ 마천루(摩天樓) :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
더위가 한창이라 달구어진 설자리엔 활꾼의 열정도 바짝 말라있다. 불볕에 익어버린 감투바위는 예사로운 듯 눈하나 깜빡이지 않아 모든것이 멈춘 섬 풍경을 닮았다. 그와중에 만개한 능소화(金藤花)가 슬그머니 목책을 넘어 이리기웃 저리기웃. 개자리에 시들어버린 풍기(風旗)도 붕어죽에 활병난 한량마냥 가는바람에 삐죽거리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골짜기가 활터의 열감(熱疳)을 죄다 끌어안아 게으른 여름 한나절이 지나간다. ☞ 용어해설 ▲ 참나리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로, 높이 1∼2m이며 흑자색이 돌고 흑자색 점이 있다. ▲ 능소화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개인적으로 여름 활터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 개자리 : 과녁 앞에 웅덩이 등을 파고..
활터의 봄볕 아래에서는 살 튀어나가는 것 보다 꽃망울이 더 빨리 터진다. 샛노란 개나리꽃, 연분홍 철쭉꽃. 덩치 큰 목련은 뒤질세라 일제히 꽃망울을 곧추 세운다. 황학정 안중(眼中)에 선 온깍지 활꾼은 고자채기로 활대를 비스듬히 제끼고 풀어 헤친 깍지손이 넉넉하다. 겹처마 너른 팔작지붕 황학정에 가면 쏟아지는 봄 햇살 같은 활꾼들의 열정으로 설자리가 비좁다. 우물마루 아래 정겨운 댓돌 삼형제. 봄햇볕에 잘 구워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그 낯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 용어해설 ☞ 고자채기 : 발시(發矢)하는 과정에서 깍지손의 탄성으로 활이 비슴듬이 재껴지는 현상. 편집자 주 ☞ : 활꾼 최고의 사진작가이신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께서 봄볕에 그을린 황학정 풍경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셨다. ^^ 언제나 접장님 사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