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궁(詩) (39)
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살 에는 추위에 옴짝달싹 사색(死色)이 되어 버린 과녁 위로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켜켜이 이불솜을 널었네. 온 몸을 싸고 매고 호호 손을 불면서 한 배 가득 당기고 놓으니 순간 멈춰버린 영원(永遠). 촉바람에 오색바람에 설 쏜 살이 간신히 굽통 쑤시니 소스라치게 놀란 과녁. 속절없이 이불솜만 주저 앉는다. 설자리 위 언발 줌통 잡은 곱은 손 이마 바로 선 높바람 목덜미를 파고드는 동장군의 엄포를 피해 급히 사우회관 속으로 몸을 숨긴다. ※ 시 해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새벽에 활터에 가면 밤새 쌓인 눈이 솜 이불 처럼 널려 있다. 새벽습사의 첫 화살에 홍심을 드러내는 놀이를 '눈털기'라고 했다. 신사 때 사범님과 함께 '눈털기'에 나섰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 ※ 용어해설 ☞ 굽통 쑤시다 : ..
아무때고 황학정(黃鶴亭)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여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과녁 삼형제 너머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가 버티고 감투바위 아래 젖은 풀잎사이로 돋보이는 꽃무릇에 윤이 난다. 활꾼의 시위가 차오르고 살(矢)이 한 배를 얻을 즈음 시수꾼의 옅은 미소가 과녁을 향해 번진다. 사우회관(射友會館) 유리창 속에 벌써 가을 활터가 걸려있다. [사진]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 [사진] 황학정 김진영 여무사님. ※ 시 해설 가을 하늘아래 활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황학정 사우회관(射友會館)에 서있는 필자를 기점으로 원경(遠景)에서 부터 점점 시각이 근경(近景)으로 [마천루-과녁-감투바위-설자리- 사우회관]옮겨 온다. ※ 용어해설 ☞ 마천루(摩天樓) :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
더위가 한창이라 달구어진 설자리엔 활꾼의 열정도 바짝 말라있다. 불볕에 익어버린 감투바위는 예사로운 듯 눈하나 깜빡이지 않아 모든것이 멈춘 섬 풍경을 닮았다. 그와중에 만개한 능소화(金藤花)가 슬그머니 목책을 넘어 이리기웃 저리기웃. 개자리에 시들어버린 풍기(風旗)도 붕어죽에 활병난 한량마냥 가는바람에 삐죽거리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골짜기가 활터의 열감(熱疳)을 죄다 끌어안아 게으른 여름 한나절이 지나간다. ☞ 용어해설 ▲ 참나리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로, 높이 1∼2m이며 흑자색이 돌고 흑자색 점이 있다. ▲ 능소화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개인적으로 여름 활터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 개자리 : 과녁 앞에 웅덩이 등을 파고..
수줍은 달(月)이 별을 사이에 두고 해(日)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밀물처럼 함께 나아가고 썰물처럼 하나같이 물러섭니다. 활은 어느 한쪽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고릅니다. 무겁에 있는 사람은 설자리(射臺)가 보이지 않습니다. 빈활을 당기는지 습사를 하는지 함께 들고 나야 모두가 안전합니다. 다시 달이 별 사이에서 해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 용어해설 ▲ 동진동퇴(同進同退) : 사대에 입장시 함께 들어가고 발시 후 질서를 지키면서 함께 퇴장한다는 의미. ▲ 밀물과 썰물 : 발생원인은 바닷물의 움직임은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이 회전운동을 하면서 발생합니다. ▲ 균형(均衡) :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끊어질 듯 우직거리는 시위 똑 부러질 것 같은 아랫장 덕에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살(矢)은 출전피(出箭皮)를 떠난다. 살(矢)이 곧장 가는 것 처럼 보여도 이리저리 헤엄치 듯 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촉바람 어떤 때는 오늬바람 눈비를 뚫기도 하고....., 포물선을 그린 살이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탄성은 사라지고 살은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촉이 과녁에 맞닿는 순간 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시위와 아랫장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하나의 살(矢)은 한 사람의 인생(人生)을 닮아 있다. ☞ [편집자 주] ▲ 출전피[出箭皮] : 활을 쏠 때, 화살이 닿는, 활등의 가운데에 붙인 가죽 조각. ▲ 촉바람 : 안 바람. 과녁에서 사대로 부는바람으로 촉바람이란 근래에 붙여진 말. ▲ 오늬바..
활터의 봄볕 아래에서는 살 튀어나가는 것 보다 꽃망울이 더 빨리 터진다. 샛노란 개나리꽃, 연분홍 철쭉꽃. 덩치 큰 목련은 뒤질세라 일제히 꽃망울을 곧추 세운다. 황학정 안중(眼中)에 선 온깍지 활꾼은 고자채기로 활대를 비스듬히 제끼고 풀어 헤친 깍지손이 넉넉하다. 겹처마 너른 팔작지붕 황학정에 가면 쏟아지는 봄 햇살 같은 활꾼들의 열정으로 설자리가 비좁다. 우물마루 아래 정겨운 댓돌 삼형제. 봄햇볕에 잘 구워져서 그런지 오늘따라 그 낯빛이 예사롭지가 않다. ※ 용어해설 ☞ 고자채기 : 발시(發矢)하는 과정에서 깍지손의 탄성으로 활이 비슴듬이 재껴지는 현상. 편집자 주 ☞ : 활꾼 최고의 사진작가이신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께서 봄볕에 그을린 황학정 풍경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셨다. ^^ 언제나 접장님 사진에..
살(矢)도 반백년을 쏘다 보면 뾰족했던 촉도 편편해지듯 젊음이 품고 있던 예리함도 세월에 따라 무뎌지게 마련일세. 다소 힘이 달리면 좀 가벼운 살을 보내면 되고 빛바랜 궁대일지언정 허리춤에 잘 묶이면 된다네. 활에 대한 나의 열정은 사거리가 변치 않았듯 구순(九旬)의 나이에도 변함이 없으니 먼저 간 내 뒷 모습이 기억되기를.. 궁대(弓袋) : 활집. 부린 활을 넣어두는 자루. 고(櫜). 건(鞬). 독(韣). 창(韔). 황학정 고 이선중 고문님의 발시 후 잔신 모습이다. 정확한 비정비팔의 발디딤과 발시 후 몸의 균형이 예술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발시 후 줌손은 정확하게 과녁을 향하고 있고 깍지손은 온깍지 발시 후 그 탄성으로 뒤로 젖혀졌으며 줌손이 약간 상향되었고 깍지손은 반대로 하향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
다른 성질이 엉겨 붙어야 세상에 없던 돌셩이 나옵니다. 부린 활을 뒤집어 얹고 옭아매야 극한의 장력(張力)이 나옵니다.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분문(糞門)을 조아야 온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넘치기 전까지 당기고 멈출수 있어야 만작(滿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중구미를 엎고 깍지손을 비틀어야 타래선(腔線)을 타고 힘차게 날아갑니다. 살은 떠났어도 마음은 놓지 않아야 궁극의 경지(境地)에 다다릅니다. 활에서 최선의 삶을 배웁니다. 활 배웁니다. ※ 용어해설 ☞ 돌셩 : 탄성(彈性) 돌아올려는 성질의 순 우리말 ☞ 복합궁 : 우리나라 활 각궁은 뽕나무,대나무,쇠뿔,쇠심줄 등 여러개의 다양한 재료를 어교(민어부레풀)로 붙인 복합궁이며, 이것이 세계 최대사거리를 내는 비결이다. ☞ 분문(糞門) : 속된말로 ..
설자리(射臺)에선 몸가짐 마음가짐. 몸도 마음도 바빠서는 않된다. 힘을 잔뜩 머금은 분문(糞門) 다섯발가락으로 방렬(放列)하라! 살먹이기가 몰아(沒我)로 가는 기점이니, 아무렴.. 허투로 할 순 없지. 활대와 시위에 걸린 살을 가슴통 한가운데 품고 겨냥한다. 누가 뭐래도 내 밀고 당김의 멈춤이 만작(滿酌)이다! 오만가지가 멈춘 지촉(知鏃)의 순간에 굳히고 잠궈라! 두 힘이 활저울 위에서 시나브로 당기다 터져 버려야 한다. 포물선을 그린 빠른 살찌라야 살이 놀라지 않는다. 빈 하늘을 비집는 소리가 나야 맞은 살이 튕겨 오늬부터 떨어진다! 맑은 쏘임소리 후 관중(貫中) 소리 들리면 나는 내 활을 쐈다 하겠다. ☞ 분문(糞門) : 똥구멍.(명사) "항문(肛門, 위창자관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구멍)"을 속되게 ..
좋아하는 일이 같아서인지 남 인데 남 같지 않은 이. 설자리에 나란히 서서 같은 목표를 향해 쏘다. 오가며 스치는 눈 웃음이 지촉(知鏃)의 느낌으로 남는다. 종잡을 수 없는 활터의 바람 말고 사우(射友)의 마음을 읽어라! 오색바람 촉바람이 불어도 정심(正心)을 안고 함께 가는 우리는 온새미로 한통속이어야 한다. ☞ 오색바람 : 방향을 알 수 없이 불어오는 바람. ☞ 촉바람 : 과녁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 지촉(知鏃) : 만작 상태에서 화살촉 ‘상사’ 부위가 줌손의 구부린 엄지손가락 첫마디와 닿는 느낌 ☞ 온새미로 :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 ☞ 한통속 : 서로 마음이 통하여 모이는 한패나 동아리를 가리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