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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교전(交戰) 습사와 평시(平時) 습사는 그 질(質)이 다르다. 그와 병사들이 날렸던 살기(殺氣) 지금 내가 날리는 운치(韻致) 격랑(激浪)의 파도 위에 격군(格軍)들의 노 젓는 소리 편편한 설자리에서 튕겨지는 시위 소리 푸른 가을 하늘 옥빛 바다 위시공(時空)을 넘어 무수한 살찌 사이로 내 살찌 하나 보태고 왔다. 깊은 밤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애 끊는 그 피리소리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활터에서 딴 과실로 술 담그는 여무사. 온 다온을 모아익어가는 석달 열흘. 더도 덜도 말고 모두에게 딱 한 모금. 귀한 떡 목 메일라 달고 시원한 배. 쏘는 즐거움 맞추는 재미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함.둥글게 모이자 웃음꽃이 피었네.활터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지화자살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도초조해 하거나 아쉬워 하지 않고담담하게 설자리를 벗어 날때 부터......,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탄탄한 줌손과 부드러운 발시소리일정한 한과 한 결 같은 통.탄착점은 언제나 같은 자리였다.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궁금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지치지 않는 열정과 부지런함.노력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믿음.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여무사가 날린 마지막 화살이우아한 살찌로 날아갈 때과녁에 무슨 일이 생길 것 인지.....,하지만,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얼마나 좋을까? ※ 용어해설 ☞ 지화자대 : 한량대라하기도 하며 한순중 마지막 5시를 말하고 한량들이 이를 중시하여 한량대 라 하였다. 4시 까지 불이어도 5시를 맞추면 기생들이 지화자를 ..

활은 믿음입니다. 겨냥한 대로 날아가고 부족한 만큼 빗나갑니다. 맞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활은 소망입니다. 맞추고자 하는 간절함이 넘쳐 몸에서 살이 떠난 후에도 마음만은 놓치 않습니다. 활은 사랑입니다. 부린 활은 무엇이든 보듬는 모양새 입니다. 모양 자체가 사랑입니다. 활은 우주입니다. 얹은 활은 풍만한 여성의 상체를 닮았고 부린 활은 건장한 남성의 가슴통 같습니다. ※ 용어해설☞ 반구저기(反求諸己) : 잘못을 자신(自身)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原因)을 자기(自己) 자신(自身)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意味). ☞ 부린활: 시위를 풀어놓은 활.☞ 얹은활(張弓) : 시위를 걸..

살 에는 추위에 옴짝달싹 사색(死色)이 되어 버린 과녁 위로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켜켜이 이불솜을 널었네. 온 몸을 싸고 매고 호호 손을 불면서 한 배 가득 당기고 놓으니 순간 멈춰버린 영원(永遠). 촉바람에 오색바람에 설 쏜 살이 간신히 굽통 쑤시니 소스라치게 놀란 과녁. 속절없이 이불솜만 주저 앉는다. 설자리 위 언발 줌통 잡은 곱은 손 이마 바로 선 높바람 목덜미를 파고드는 동장군의 엄포를 피해 급히 사우회관 속으로 몸을 숨긴다. ※ 시 해설눈이 많이 내리는 날 새벽에 활터에 가면 밤새 쌓인 눈이 솜 이불 처럼 널려 있다. 새벽습사의 첫 화살에 홍심을 드러내는 놀이를 '눈털기'라고 했다. 신사 때 사범님과 함께 '눈털기'에 나섰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 용어해설☞ 굽통 쑤시다 : 화살이..

사냥꾼의 가쁜 가래질에뻘 속 새까만 숨구멍마저틀어 막혔을 때소스라치게 놀라살길을 찾는낙지의 잽싼 몸놀림처럼연신 일상(日常)이 짓누르는먹먹함을 피해활터에 몸을 기댔다.'활'은 말 그대로 나를펄떡거리게 만들었고'터'는 멍석을 깔아 주었다.온새미로 활터에 녹아들었고놓칠 수 없어줌통쥐듯 움켜잡았다.홍심(紅心)에 이끌려빠알간 불빛도 보고촉에 묻어 온 붉은 빛깔에 웃어본다.깊고 엄혹한 골짜기에 부는 바람돌과 나무 그리고 사람나는 활터의 일부가 되었다. ※ 용어해설 ☞ 줌(통) : 활을 쏠 때 손으로 잡는 활 가운데 부분. 일명 줌통. 쥐다에서 유래.☞ 홍심(紅心) : 과녁에서 붉은 칠을 한 동그란 부분.

아무때고 황학정(黃鶴亭)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여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과녁 삼형제 너머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가 버티고 감투바위 아래 젖은 풀잎사이로 돋보이는 꽃무릇에 윤이 난다. 활꾼의 시위가 차오르고 살(矢)이 한 배를 얻을 즈음 시수꾼의 옅은 미소가 과녁을 향해 번진다. 사우회관(射友會館) 유리창 속에 벌써 가을 활터가 걸려있다. [사진]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 [사진] 황학정 김진영 여무사님. ※ 시 해설 가을 하늘아래 활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황학정 사우회관(射友會館)에 서있는 필자를 기점으로 원경(遠景)에서 부터 점점 시각이 근경(近景)으로 [마천루-과녁-감투바위-설자리- 사우회관]옮겨 온다. ※ 용어해설 ☞ 마천루(摩天樓) :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

더위가 한창이라달구어진 설자리엔활꾼의 열정도 바짝 말라있다. 불볕에 익어버린 감투바위는예사로운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아모든것이 멈춘 섬 풍경을 닮았다.그와중에 만개한 능소화(金藤花)가슬그머니 목책을 넘어 이리기웃 저리기웃. 개자리에 시들어버린 풍기(風旗)도 붕어죽에 활병난 한량마냥 가는바람에 삐죽거리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골짜기가활터의 열감(熱疳)을 죄다 끌어안아게으른 여름 한나절이 지나간다. ☞ 용어해설▲ 참나리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로, 높이 1∼2m이며 흑자색이 돌고 흑자색 점이 있다. ▲ 능소화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개인적으로 여름 활터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 개자리 : 과녁 앞에 웅덩이 등을 파고 사람..

수줍은 달(月)이 별을 사이에 두고 해(日)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밀물처럼 함께 나아가고 썰물처럼 하나같이 물러섭니다. 활은 어느 한쪽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고릅니다. 무겁에 있는 사람은 설자리(射臺)가 보이지 않습니다. 빈활을 당기는지 습사를 하는지 함께 들고 나야 모두가 안전합니다. 다시 달이 별 사이에서 해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 용어해설 ▲ 동진동퇴(同進同退) : 사대에 입장시 함께 들어가고 발시 후 질서를 지키면서 함께 퇴장한다는 의미. ▲ 밀물과 썰물 : 발생원인은 바닷물의 움직임은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이 회전운동을 하면서 발생합니다. ▲ 균형(均衡) :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끊어질 듯 우직거리는 시위 절대 부러지지 않는 아랫장 덕에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탄생한살(矢)은 출전피(出箭皮)를 떠난다. 살(矢)이 곧장 가는 것 처럼 보여도 이리저리 헤엄치 듯 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촉바람 어떤 때는 오늬바람 눈비를 뚫기도 하고....., 포물선을 그린 살(矢)이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탄성은 사라지고 살(矢)은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촉이 과녁에 맞닿는 순간 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시위와 아랫장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하나의 살(矢)은 한 사람의 인생(人生)을 닮아 있다. ☞ [편집자 주]▲ 출전피[出箭皮] : 활을 쏠 때, 화살이 닿는, 활등의 가운데에 붙인 가죽 조각.▲ 촉바람 : 안 바람. 과녁에서 사대로 부는바람으로 촉바람이란 근래에 붙여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