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국궁(詩) (44)
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활터의 봄볕 아래에서는 살 튀어나가는 것 보다 꽃망울이 더 빨리 터진다. 샛노란 개나리꽃, 연분홍 철쭉꽃. 덩치 큰 목련은 뒤질세라 일제히 꽃망울을 곧추 세운다. 황학정 안중(眼中)에 선 온깍지 활꾼은 고자채기로 활대를 비스듬히 제끼고 풀어 헤친 깍지손이 넉넉하다. 겹처마 너른 팔작지붕 황학정에 가면쏟아지는 봄 햇살 같은 활꾼들의 열정으로설자리조차 비좁다. 우물마루 아래 정겨운 댓돌 삼형제.봄햇볕에 잘 구워져서 그런지오늘따라 그 낯빛이 예사롭지가 않구나! ※ 용어해설☞ 고자채기 : 발시(發矢)하는 과정에서 깍지손의 탄성으로 활이 비슴듬이 재껴지는 현상. 편집자 주 ☞ : 활꾼 최고의 사진작가이신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께서 봄볕에 그을린 황학정 풍경을 페이스북에 올려 주셨다. ^^ 언제나 접장님 사..

살(矢)도 반백년을 쏘다 보면 뾰족했던 촉도 편편해지듯 젊음이 품고 있던 예리함도 세월에 따라 무뎌지게 마련일세. 다소 힘이 달리면 좀 가벼운 살을 보내면 되고 빛바랜 궁대일지언정 허리춤에 잘 묶이면 된다네. 활에 대한 나의 열정은 사거리가 변치 않았듯 구순(九旬)의 나이에도 변함이 없으니 먼저 간 내 뒷 모습이 기억되기를.. 궁대(弓袋) : 활집. 부린 활을 넣어두는 자루. 고(櫜). 건(鞬). 독(韣). 창(韔). 황학정 고 이선중 고문님의 발시 후 잔신 모습이다. 정확한 비정비팔의 발디딤과 발시 후 몸의 균형이 예술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발시 후 줌손은 정확하게 과녁을 향하고 있고 깍지손은 온깍지 발시 후 그 탄성으로 뒤로 젖혀졌으며 줌손이 약간 상향되었고 깍지손은 반대로 하향하여 균형을 이루고 있..

다른 성질이 엉겨 붙어야 세상에 없던 돌셩이 나옵니다. 부린 활을 뒤집어 얹고 옭아매야 극한의 장력(張力)이 나옵니다.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분문(糞門)을 조아야 온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넘치기 전까지 당기고 멈출수 있어야 만작(滿酌)에 이를 수 있습니다. 중구미를 엎고 깍지손을 비틀어야 타래선(腔線)을 타고 힘차게 날아갑니다. 살은 떠났어도 마음은 놓지 않아야 궁극의 경지(境地)에 다다릅니다. 활에서 최선의 삶을 배웁니다. 활 배웁니다. ※ 용어해설 ☞ 돌셩 : 탄성(彈性) 돌아올려는 성질의 순 우리말 ☞ 복합궁 : 우리나라 활 각궁은 뽕나무,대나무,쇠뿔,쇠심줄 등 여러개의 다양한 재료를 어교(민어부레풀)로 붙인 복합궁이며, 이것이 세계 최대사거리를 내는 비결이다. ☞ 분문(糞門) : 속된말로 ..

설자리(射臺)에선 몸가짐 마음가짐. 몸도 마음도 바빠서는 않된다. 힘을 잔뜩 머금은 분문(糞門) 다섯발가락으로 방렬(放列)하라! 살먹이기가 몰아(沒我)로 가는 기점이니, 아무렴.. 허투로 할 순 없지. 활대와 시위에 걸린 살을 가슴통 한가운데 품고 겨냥한다. 누가 뭐래도 내 밀고 당김의 멈춤이 만작(滿酌)이다! 오만가지가 멈춘 지촉(知鏃)의 순간에 굳히고 잠궈라! 두 힘이 활저울 위에서 시나브로 당기다 터져 버려야 한다. 포물선을 그린 빠른 살찌라야 살이 놀라지 않는다. 빈 하늘을 비집는 소리가 나야 맞은 살이 튕겨 오늬부터 떨어진다! 맑은 쏘임소리 후 관중(貫中) 소리 들리면 나는 내 활을 쐈다 하겠다. ☞ 분문(糞門) : 똥구멍.(명사) "항문(肛門, 위창자관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구멍)"을 속되게 ..

좋아하는 일이 같아서인지 남 인데 남 같지 않은 이. 설자리에 나란히 서서 같은 목표를 향해 쏘다. 오가며 스치는 눈 웃음이 지촉(知鏃)의 느낌으로 남는다. 종잡을 수 없는 활터의 바람 말고 사우(射友)의 마음을 읽어라! 오색바람 촉바람이 불어도 정심(正心)을 안고 함께 가는 우리는 온새미로 한통속이어야 한다. ☞ 오색바람 : 방향을 알 수 없이 불어오는 바람. ☞ 촉바람 : 과녁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 지촉(知鏃) : 만작 상태에서 화살촉 ‘상사’ 부위가 줌손의 구부린 엄지손가락 첫마디와 닿는 느낌 ☞ 온새미로 :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긴 그대로. ☞ 한통속 : 서로 마음이 통하여 모이는 한패나 동아리를 가리키는 말.

[결혼 5주년을 기념하며..] 반으로 쪼개진 대나무(桶兒) 속에 길이마저 반쪽인 애깃살(片箭) 분명 쏜 것 같은데 안 쏜 것 처럼 보인다. 천 보 밖의 적(敵)은 그 궁금증을 미처 풀지도 못하고 스러진다. 모자란 반쪽 둘이 만나 천 보를 날아간다. ※ 용어해설 ☞ 통아(桶兒) : 짧은 화살을 쏠 때에 화살을 담아서 활의 시위에 얹어서 쏘는 가느다란 나무통으로 화살은 이 통 속을 거쳐서 나가고 통은 앞에 떨어진다. 이것은 원통의 대나무를 사선으로 깎아 만들었다. ☞ 애깃살(片箭) : 편전은 일반적인 화살인 장전(長箭)에 비해 길이가 매우 짧은 화살을 뜻한다. 편전은 우리말로 애기살이라고도 부르며, 이를 번역해 동전(童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전(童箭)·변전(邊箭)도 편전의 다른 이름이다.

죽시(竹矢)에 붙이는 깃은 꿩의 깃털로 만들어 살(矢)은 마치 꿩이 머리를 틀어 박듯 푸른 하늘을 날다 냅다 떨어진다. 꿩 치(雉)자가 화살 시(矢)를 품은 이유다. 새장에 가두어도 길들여 지지 않는 꿩 처럼 활쏘기엔 타협이 없어야 한다. 활쏘기를 마친 후엔 꿩 구워 먹은 자리처럼 마음 속의 앙금이 없어야 한다. ※ 용어해설 ☞ 앙금 :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개운치 아니한 감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꿩 구워먹은 자리 : 어떠한 일의 흔적이 전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몸 속 세포를 채우는 공기를 느끼며호흡을 통제하라! 호흡이 통제되야마음이 통제된다.!이 무의식(無意識)의 순간에연삽하게 내라! 심장 소리를 듣고날숨이 멎는박동과 박동사이에발시하라! 타겟이 작아야조금 빗나간다.!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고 -

(박기복 여무사님,이영주 여무사님,박찬민 어르신을 기억하며..) 돌림병이 또아리를 틀자 뜨락에 핀 웃음소리 사라지고 거궁(擧弓) 과 발시(發矢)가 엇갈리며 북적이던 설자리마저 휑해지고 난리통에도 이어졌던 삭회(朔會)는 통지문 조차 띄우지 못했다. 든 자리도 없이 활공부만 하셔서 그런지 어르신 떠나던 날 아무도 난 자리를 알지 못했다. 활터를 등지고 돌아선 순간 긴 세월 쏘아 올렸던 무수한 살찌만 빈 하늘에 잔신(殘身)처럼 남았다. ※ 용어해설 ☞ 거궁(擧弓) : 활 들어 올리기. ☞ 발시(發矢) : 화살을 쏘는 행위. ☞ 잔신(殘身) : 화살은 몸을 떠났지만 마음은 떠나면 안 된다.

들키지 않을 만큼 가죽[出箭皮]에 기댄 살(矢)이 만작(滿酌)에 걸려 있다. 터질듯 늘려놓고선 야무지게 쥐어짜는 줌손과 깍지손. 시위의 짜증은 고빗사위를 넘어 한 두올은 그냥 뜯겨 나갈 판. 들숨이 터져 나오기 전. 표(貫革) 덜미를 잡아 시공(時空)이 멈춰버린 영원(永遠). 그래 지금이야! ※ 용어해설 ☞ 출전피(出箭皮) : 활 옆에 살이 닿는 곳에 붙인 가죽. ☞ 만작(滿酌) : 활을 쏘기 위하여 화살을 놓기 직전까지 살을 최대한 당긴 동작 상태. ☞ 고빗사위 [순 우리말] : 중요한 고비 가운데서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