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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살 에는 추위에 옴짝달싹 사색(死色)이 되어 버린 과녁 위로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켜켜이 이불솜을 널었네. 온 몸을 싸고 매고 호호 손을 불면서 한 배 가득 당기고 놓으니 순간 멈춰버린 영원(永遠). 촉바람에 오색바람에 설 쏜 살이 간신히 굽통 쑤시니 소스라치게 놀란 과녁. 속절없이 이불솜만 주저 앉는다. 설자리 위 언발 줌통 잡은 곱은 손 이마 바로 선 높바람 목덜미를 파고드는 동장군의 엄포를 피해 급히 사우회관 속으로 몸을 숨긴다. ※ 시 해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새벽에 활터에 가면 밤새 쌓인 눈이 솜 이불 처럼 널려 있다. 새벽습사의 첫 화살에 홍심을 드러내는 놀이를 '눈털기'라고 했다. 신사 때 사범님과 함께 '눈털기'에 나섰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 ※ 용어해설 ☞ 굽통 쑤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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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네 내가 모르는 곳에 떨어졌네 너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 공중을 향해 부른 노래 하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떨어졌네 아무리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다 해도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숲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있었네 - 롱펠로 作 '화살과 노래'
아무때고 황학정(黃鶴亭)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여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과녁 삼형제 너머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가 버티고 감투바위 아래 젖은 풀잎사이로 돋보이는 꽃무릇에 윤이 난다. 활꾼의 시위가 차오르고 살(矢)이 한 배를 얻을 즈음 시수꾼의 옅은 미소가 과녁을 향해 번진다. 사우회관(射友會館) 유리창 속에 벌써 가을 활터가 걸려있다. [사진]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 [사진] 황학정 김진영 여무사님. ※ 시 해설 가을 하늘아래 활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황학정 사우회관(射友會館)에 서있는 필자를 기점으로 원경(遠景)에서 부터 점점 시각이 근경(近景)으로 [마천루-과녁-감투바위-설자리- 사우회관]옮겨 온다. ※ 용어해설 ☞ 마천루(摩天樓) :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
더위가 한창이라 달구어진 설자리엔 활꾼의 열정도 바짝 말라있다. 불볕에 익어버린 감투바위는 예사로운 듯 눈하나 깜빡이지 않아 모든것이 멈춘 섬 풍경을 닮았다. 그와중에 만개한 능소화(金藤花)가 슬그머니 목책을 넘어 이리기웃 저리기웃. 개자리에 시들어버린 풍기(風旗)도 붕어죽에 활병난 한량마냥 가는바람에 삐죽거리고 있다. 산자락을 따라 늘어선 골짜기가 활터의 열감(熱疳)을 죄다 끌어안아 게으른 여름 한나절이 지나간다. ☞ 용어해설 ▲ 참나리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로, 높이 1∼2m이며 흑자색이 돌고 흑자색 점이 있다. ▲ 능소화 :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능소화과의 낙엽성 덩굴식물.개인적으로 여름 활터에 가장 어울리는 꽃이다.^^ ▲ 개자리 : 과녁 앞에 웅덩이 등을 파고..
수줍은 달(月)이 별을 사이에 두고 해(日)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밀물처럼 함께 나아가고 썰물처럼 하나같이 물러섭니다. 활은 어느 한쪽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고릅니다. 무겁에 있는 사람은 설자리(射臺)가 보이지 않습니다. 빈활을 당기는지 습사를 하는지 함께 들고 나야 모두가 안전합니다. 다시 달이 별 사이에서 해와 줄다리기를 합니다. ☞ 용어해설 ▲ 동진동퇴(同進同退) : 사대에 입장시 함께 들어가고 발시 후 질서를 지키면서 함께 퇴장한다는 의미. ▲ 밀물과 썰물 : 발생원인은 바닷물의 움직임은 지구와 달 그리고 태양이 회전운동을 하면서 발생합니다. ▲ 균형(均衡) :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고른 상태.
끊어질 듯 우직거리는 시위 똑 부러질 것 같은 아랫장 덕에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살(矢)은 출전피(出箭皮)를 떠난다. 살(矢)이 곧장 가는 것 처럼 보여도 이리저리 헤엄치 듯 날 수 밖에 없다. 때로는 촉바람 어떤 때는 오늬바람 눈비를 뚫기도 하고....., 포물선을 그린 살이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탄성은 사라지고 살은 자유낙하를 시작한다. 촉이 과녁에 맞닿는 순간 내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시위와 아랫장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하나의 살(矢)은 한 사람의 인생(人生)을 닮아 있다. ☞ [편집자 주] ▲ 출전피[出箭皮] : 활을 쏠 때, 화살이 닿는, 활등의 가운데에 붙인 가죽 조각. ▲ 촉바람 : 안 바람. 과녁에서 사대로 부는바람으로 촉바람이란 근래에 붙여진 말. ▲ 오늬바..
비가 내린 仁王山에 휘감긴 몇 장의 구름이 빗물에 젖은 주봉을 어루만지며 유유자적하게 흘러간다. 수 세기전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는 지금의 효자동과 청와대 부근에서 이 비경을 보고 그 감흥을 이기지 못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를 그렸다. 매일 보는 그 산에 무슨 진한 감동이 있었는지 자연이 빚어낸 생활속의 비경에 겨워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는 서둘러 먹을 갈았을 것이다. 영겁의 세월을 버텨온 그 투박한 바위에 빗물이 스며들 즈음 때를 같이하여 그 짙은 먹물이 두꺼운 한지에 스며드는 순간 세기의 역작 [仁王霽色圖]이 완성되었다. 그는 특유의 웅장한 필치로 비에 젖은 주봉을 힘차게 표현했으며 먹의 농담(濃淡)으로 그 가파른 경사를 가지고 놀았다. 그가 그림에서 표현한 인왕산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