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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 하고 평생을 컴퓨터와 관련된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온 내가 생뚱맞게 시를 한번 써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는 '활'에 있다. ㅎㅎ 2013년 처음으로 황학정 국궁교실에서 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수업중 사용하는 용어에 너무나 많은 순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그 용어의 의미에 빠져 들게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대충 한번 읊어 보면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인데 범아귀를 필두로 죽머리,중구미,불그름,가슴통,줌손,등힘.. 너무도 낯설지만 활쏘기를 함에 있어 매우 주요한 신체의 일부가 고스란히 우리말로 남아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실은 우리 신체에 대한 순우리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 우리말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가 우리 '활'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

교전(交戰) 습사와 평시(平時) 습사는 그 질(質)이 다르다. 그와 병사들이 날렸던 살기(殺氣) 지금 내가 날리는 운치(韻致) 격랑(激浪)의 파도 위에 격군(格軍)들의 노 젓는 소리 편편한 설자리에서 튕겨지는 시위 소리 푸른 가을 하늘 옥빛 바다 위시공(時空)을 넘어 무수한 살찌 사이로 내 살찌 하나 보태고 왔다. 깊은 밤 수루(戍樓)에 홀로 앉아 있으면 애 끊는 그 피리소리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활터에서 딴 과실로 술 담그는 여무사. 온 다온을 모아익어가는 석달 열흘. 더도 덜도 말고 모두에게 딱 한 모금. 귀한 떡 목 메일라 달고 시원한 배. 쏘는 즐거움 맞추는 재미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넉넉함.둥글게 모이자 웃음꽃이 피었네.활터는 이런 곳이어야 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지화자살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도초조해 하거나 아쉬워 하지 않고담담하게 설자리를 벗어 날때 부터......,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탄탄한 줌손과 부드러운 발시소리일정한 한과 한 결 같은 통.탄착점은 언제나 같은 자리였다.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궁금한 것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지치지 않는 열정과 부지런함.노력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란 강한 믿음.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여무사가 날린 마지막 화살이우아한 살찌로 날아갈 때과녁에 무슨 일이 생길 것 인지.....,하지만,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얼마나 좋을까? ※ 용어해설 ☞ 지화자대 : 한량대라하기도 하며 한순중 마지막 5시를 말하고 한량들이 이를 중시하여 한량대 라 하였다. 4시 까지 불이어도 5시를 맞추면 기생들이 지화자를 ..

활은 믿음입니다. 겨냥한 대로 날아가고 부족한 만큼 빗나갑니다. 맞지 않으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활은 소망입니다. 맞추고자 하는 간절함이 넘쳐 몸에서 살이 떠난 후에도 마음만은 놓치 않습니다. 활은 사랑입니다. 부린 활은 무엇이든 보듬는 모양새 입니다. 모양 자체가 사랑입니다. 활은 우주입니다. 얹은 활은 풍만한 여성의 상체를 닮았고 부린 활은 건장한 남성의 가슴통 같습니다. ※ 용어해설☞ 반구저기(反求諸己) : 잘못을 자신(自身)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原因)을 자기(自己) 자신(自身)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意味). ☞ 부린활: 시위를 풀어놓은 활.☞ 얹은활(張弓) : 시위를 걸..

살 에는 추위에 옴짝달싹 사색(死色)이 되어 버린 과녁 위로 밤새 살포시 내린 눈이 켜켜이 이불솜을 널었네. 온 몸을 싸고 매고 호호 손을 불면서 한 배 가득 당기고 놓으니 순간 멈춰버린 영원(永遠). 촉바람에 오색바람에 설 쏜 살이 간신히 굽통 쑤시니 소스라치게 놀란 과녁. 속절없이 이불솜만 주저 앉는다. 설자리 위 언발 줌통 잡은 곱은 손 이마 바로 선 높바람 목덜미를 파고드는 동장군의 엄포를 피해 급히 사우회관 속으로 몸을 숨긴다. ※ 시 해설눈이 많이 내리는 날 새벽에 활터에 가면 밤새 쌓인 눈이 솜 이불 처럼 널려 있다. 새벽습사의 첫 화살에 홍심을 드러내는 놀이를 '눈털기'라고 했다. 신사 때 사범님과 함께 '눈털기'에 나섰던 그 열정을 되찾고 싶다. ^^~※ 용어해설☞ 굽통 쑤시다 : 화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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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네 내가 모르는 곳에 떨어졌네 너무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을 시선은 따라갈 수 없었네. 공중을 향해 부른 노래 하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떨어졌네 아무리 날카롭고 강한 눈이 있다 해도 날아가는 노래를 따라갈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숲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 그리고 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의 가슴속에 있었네 - 롱펠로 作 '화살과 노래'

사냥꾼의 가쁜 가래질에뻘 속 새까만 숨구멍마저틀어 막혔을 때소스라치게 놀라살길을 찾는낙지의 잽싼 몸놀림처럼연신 일상(日常)이 짓누르는먹먹함을 피해활터에 몸을 기댔다.'활'은 말 그대로 나를펄떡거리게 만들었고'터'는 멍석을 깔아 주었다.온새미로 활터에 녹아들었고놓칠 수 없어줌통쥐듯 움켜잡았다.홍심(紅心)에 이끌려빠알간 불빛도 보고촉에 묻어 온 붉은 빛깔에 웃어본다.깊고 엄혹한 골짜기에 부는 바람돌과 나무 그리고 사람나는 활터의 일부가 되었다. ※ 용어해설 ☞ 줌(통) : 활을 쏠 때 손으로 잡는 활 가운데 부분. 일명 줌통. 쥐다에서 유래.☞ 홍심(紅心) : 과녁에서 붉은 칠을 한 동그란 부분.

아무때고 황학정(黃鶴亭)에 가면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여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과녁 삼형제 너머 병풍 같은 마천루(摩天樓)가 버티고 감투바위 아래 젖은 풀잎사이로 돋보이는 꽃무릇에 윤이 난다. 활꾼의 시위가 차오르고 살(矢)이 한 배를 얻을 즈음 시수꾼의 옅은 미소가 과녁을 향해 번진다. 사우회관(射友會館) 유리창 속에 벌써 가을 활터가 걸려있다. [사진] 황학정 박하식 접장님. [사진] 황학정 김진영 여무사님. ※ 시 해설 가을 하늘아래 활터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황학정 사우회관(射友會館)에 서있는 필자를 기점으로 원경(遠景)에서 부터 점점 시각이 근경(近景)으로 [마천루-과녁-감투바위-설자리- 사우회관]옮겨 온다. ※ 용어해설 ☞ 마천루(摩天樓) :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