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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대학에서 항해학을 전공 하고 평생을 컴퓨터와 관련된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살아온 내가 생뚱맞게 시를 한번 써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계기는 '활'에 있다. ㅎㅎ 2013년 처음으로 황학정 국궁교실에서 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수업중 사용하는 용어에 너무나 많은 순 우리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그 용어의 의미에 빠져 들게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대충 한번 읊어 보면 우리 몸에 대한 이야기인데 범아귀를 필두로 죽머리,중구미,불그름,가슴통,줌손,등힘.. 너무도 낯설지만 활쏘기를 함에 있어 매우 주요한 신체의 일부가 고스란히 우리말로 남아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 실은 우리 신체에 대한 순우리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 우리말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분야가 우리 '활'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

비가 내린 仁王山에 휘감긴 몇 장의 구름이 빗물에 젖은 주봉을 어루만지며 유유자적하게 흘러간다. 수 세기전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는 지금의 효자동과 청와대 부근에서 이 비경을 보고 그 감흥을 이기지 못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를 그렸다. 매일 보는 그 산에 무슨 진한 감동이 있었는지 자연이 빚어낸 생활속의 비경에 겨워 그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는 서둘러 먹을 갈았을 것이다. 영겁의 세월을 버텨온 그 투박한 바위에 빗물이 스며들 즈음 때를 같이하여 그 짙은 먹물이 두꺼운 한지에 스며드는 순간 세기의 역작 [仁王霽色圖]이 완성되었다. 그는 특유의 웅장한 필치로 비에 젖은 주봉을 힘차게 표현했으며 먹의 농담(濃淡)으로 그 가파른 경사를 가지고 놀았다. 그가 그림에서 표현한 인왕산은 ..

언제부터인지 한쪽 손에 지팡이를 짚으신 고 이선중 고문님은 힘에 겨워 하시면서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황학정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계셨다. 한 두걸음 걷다가 쉬었다가 힘에 겨워 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축이라도 해 드릴양이면 '아~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시며 늦더라도 당신의 힘으로 기어이 사우회관에 도착하셔서 스스로 궁대도 매시고 활도 부리고 그렇게 활 채비가 끝나면 다시 느린 걸음으로 사대를 향해서 당신만의 목표를 달성하셨다. 고문님을 주의깊게 본 사우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고문님의 화살은 유난히 가늘고 또 가볍다. 당연히 9순 노인께서 활을 과녁까지 보내시려면 힘에 겨우실것이고 활도 화살도 그렇게 세월에 따라 변 할 수 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문님 화살의 촉이 닳아서 뾰족한 부분이 모두 사..

(사)황학정에서 윤상만,이민 명궁님 인증기념 연회가 지난 12월7일에 열렸다. 명궁님들의 찬조와 집행부의 후원으로 연회가 마련되었고 연회 중 이벤트성 편사대회가 있었다. 사우회관에 잘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명궁인증이 마치 내 일인양 모든 사우들이 모여 축하해주면서 활터에서 느끼는 가족같은 분위기로 흥이 절정에 달했다. 오랜기간 동안 내홍으로 몸살을 앓아온 황학정이었지만 신임 방사두님의 친화력과 포용의 리더쉽으로 이제 황학정은 안정을 찾은 것 같다. 참으로 고맙고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편사대회는 이전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전개 되었는데 소위 말하는 '무작위 편사'였다. 추첨으로 번호를 정해 5명이 한조로 편성되다보니 친하던 친하지 않던 복불복 형태로 팀이 짜여져 신사와 구사 할 것 없..

지난주 국궁교실 13주차 교육이 종료된 시점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두번의 야외습사에도 불구하고 관중의 짜릿함을 맛보지 못한 터라 그 아쉬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관중을 하지 못했지만 감질맛 나는 것이 살착(?)이 형성된 것이 과녁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통이 맞으면 덜가서 안맞고 한이 맞으면 주로 앞나는 경우가 많았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박용범 사범님 : 오늘로써 13주차 교육은 모두 종료되고 앞으로는 황학정 입사 희망자를 대상으로 수요일 저녁에 황학정에서 습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거리가 너무 짧거나 위험하다고 판단 되는 경우는 습사에서 제외됩니다. 부지런히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수요일 저녁 좀 서둘러 퇴근을 하고 국궁전수관에 도..

지난 주말 제가 활을 내는 황학정에서 514회 삭회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영광스러운 장원(1등)을 함으로써 기분좋게 주말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삭회란 같이 활을 내는 동호인들이 매월 돌아가면서 음식과 술, 상품등을 준비해서 그 동안 쌓은 기량을 겨루며 친목을 다지는 자정대회입니다. 514회까지 이어졌으니 대단한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회를 치르던 중 제가 장원을 한 것 보다 더 묵직한 울림을 받는 특별한 사건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ㅎㅎ삭회는 총 5순(25발) 경기로 치러졌는데 4순을 다 쏜 상태에서 저는 뭐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궁사로써 시수도 그저 그랬답니다. 회사업무도 있고 육아다 뭐다 해서 실제로 거의 습사를 하지 못한 상태라 대회 전이나 대회중에도 수상은 언강생심 꿈꾸..

제3편 : 정심정기(正心正己) 정심정기(正心正己) : 몸과 마음을 항상 바르게 한다. ... 지난번 제 1편에서 격물치지에 대해서 설을 풀면서 결국 격물치지가 정심정기와 맞닿아있지 않겠는가? 라고 추측 한 바 있는데 사실은 이미 노자께서 저술하신 대학에서 格物致知 誠意正心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이런 말씀이 있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천하를 다스리기 전에 몸과 마음을 닦아 집안부터 바르게 다스려야 함을 강조한 말)는 널리 알려져 있는 반면 격물치지 성의정심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전문을 펼쳐서 요약을 해보면 치열한 연구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제대로 알아야 하고 마음에 품은 뜻을 실행하고 그런 바른 마음이 쌓여 몸으로 실천하면서 가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런 연후..
제2편 :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아일체(物我一體) : 일체 대상과 그것을 마주한 주체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없는 것. 주체와 객체의 분별심이 사라져 조화를 이룬 진실한 세계를 가리킨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창한 노자는 대자연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 얻게 되는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를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표현했다. 나는 활쏘기야 말로 주체와 객체의 분별심이 사라져 조화를 이룬 진실한 세계의 한 장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이유를 나름 설득력 있게 한번 풀어보겠다.^^~ 궁장(弓匠)은 활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궁장의 입장에서 보면 화살의 속도와 사거리를 늘리것이 최대의 관심사다. 궁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에서 구한 다양한 재료(대나무,소 심줄,민어부레풀,물소뿔,뽕..

제1편 : 격물치지(格物致知) 2013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황학정 국궁교실에 입교를 하였다. 난방도 되지 않는 차가운 바닥에 빛바랜 양탄자가 깔린 어수선한 풍경이었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들이 사방을 둘러싸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옷걸이 처럼 생긴 벽걸이에 수 없이 매달린 개량궁도 신기했지만 교실 바닥에 놓여있는 도지개와 각종 활 관련 용품들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나는 국궁교실 정면에 걸린 격물치지라는 현판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긴 한데 격물치지라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 현판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격물치지란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등장하는 말인데 그 뜻은 다음과 같다. 격물치지(格物致知) : 모든 사물은 끝까지 파고 들면 그 이치를 알..
언젠가 어느 식당에 황학정 사우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간적이 있다. 좌중에 계신 분들이 동호회 분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식당 사장 : 그런데 활쏘기는 어떤 점이 매력이 있습니까? (그는 우리 일행 중 한 분과 지인이셨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눈을 껌뻑인다. 잠시 고요가 흐르던 찰라 빛나는 순발력으로 구라를 풀기 시작했다.ㅎㅎ 나 : 인간에게는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는 무엇인가를 몸 밖으로 보다 멀리 보내는데 쾌감을 느끼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장에서 선수가 홈런을 치면 보는 것 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흥분되지 않습니까? 낚시도 캐스팅을 해서 미끼를 최대한 멀리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골프도 드라이버 샷을 날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