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대통몰기의 추억.. 본문
언제부터인지 한쪽 손에 지팡이를 짚으신 고 이선중 고문님은 힘에 겨워 하시면서도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황학정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계셨다. 한 두걸음 걷다가 쉬었다가 힘에 겨워 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축이라도 해 드릴양이면 '아~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시며 늦더라도 당신의 힘으로 기어이 사우회관에 도착하셔서 스스로 궁대도 매시고 활도 부리고 그렇게 활 채비가 끝나면 다시 느린 걸음으로 사대를 향해서 당신만의 목표를 달성하셨다.
고문님을 주의깊게 본 사우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고문님의 화살은 유난히 가늘고 또 가볍다. 당연히 9순 노인께서 활을 과녁까지 보내시려면 힘에 겨우실것이고 활도 화살도 그렇게 세월에 따라 변 할 수 밖에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문님 화살의 촉이 닳아서 뾰족한 부분이 모두 사라지고 그냥 화살촉이 평평하다. 아마 고문님 화살촉만으로도 고인의 활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젊은 시절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시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하셨던 검사의 삶이 촉과 같았다면 9순의 나이에는 당신의 무뎌진 촉 처럼 매사에 둥글고 무리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느릿한 걸음으로 사대에 오셨는데 마침 같은 사대에서 활을 낼 기회가 있었다. 고문님은 황학정에서 가장 연장자이시니 당연히 1번 사대에서 활을 내셨다. 활을 같이 내다 보니 나는 1시와 5시를 맞춰 2중의 초라한 성적으로 사대를 벗어나는데 빙긋히 웃으시면서
고 이선중 고문님 : '정접장 대통몰기 하셨네. 혹시 대통몰기 혹은 겉몰기가 뭔지 아시오?'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걸지 않으시는 분인데 한편 놀랍기도 하고 실제로 대통몰기가 뭔지 몰라서 나도 빙긋 입가에 미소를 띠며
나: "고문님? 대통몰기가 뭔가요?" 하고 여쭈었다.
고 이선중 고문님 : '정접장이 초시와 막시를 맞췄으니 가운데(2,3,4)가 비어 있지 않나요? 그래서 옛날부터 대통몰기라는 말이 있지요 하하하'
하얀 이를 드러내시며 어린아이 같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셨다. 잘 웃지 않는 노인의 웃음은 아기의 웃음을 닮아 있다.
아마도 개인적인 사담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초라한 2중으로 의기소침 할까봐 활터 어르신의 응원 말씀이었는지 아니면 더 정진해서 완전한 몰기를 하라는 격려의 말씀이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당시 나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새겨들었다. ㅎㅎ
어자피 그 분의 인생이나 나의 인생은 같을 수도 없고 또 따라갈수도 따라갈 이유도 없지만 9순의 나이에도 활에 대한 열정과 건강을 유지하셨던 그 분의 활 인생만큼은 부럽기도 하고 꼭 따라가고 싶다.
향년 98세로 천수를 누리셨지만 활터에서든 길목에서 뵙던 어르신께서 운명을 달리 하셨다고 하니 가슴 한켠이 뭔가 휑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삶과 죽음은 원래 그런 것인가 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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