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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나도 내가 언제 떠날지 알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어두운 통속에 거꾸로 서 있거나 떨어질 듯 허리춤에 반 쯤 매달려 있다. 시시때때로 뒷꿈치를 잡힌나는 그 덕에 자세를 곧추 세울순 있지만 덜미를 잡힌 토끼처럼 이내 뻣뻣해지고 만다. 어색한 각도로 들린 몸을 겨우 가누고 그나마 안정될 무렵......, 스르르 뒤로 밀리나 싶더니 이미 사선(射線)에 걸린 내 몸뚱아리 앞뒤를 짜는 익숙한 손길 미세한 떨림마저 멈춘 바로 이 순간......, 하지만 나도 내가 언제 떠날지 알지 못한다.
한 생물(牛)이 죽어 부속마저 무생물이 되다. 깍이고 패여서 다시 다른 생물(人)의 일부가 되다. 한옥 처마끝을 닮아 휘어진 각도를 통해 튕겨져 나갈 시위를 그리며......,
한 가닥 외줄 끝에 힘겹게 매달려 풍랑(風浪)속 조각배 마냥 위태롭게 건너오네. 전생에 지은 죄가 무엇이길래 수 만번 같은 길을 오가도 멈출 기약(期約)은 없어라! 님이여 ! 행여 살 날러 갔다 돌아 오는길이 다소 힘에 부치더라도 떨어진 화살만 담지말고 활터의 옛 영광도 다시 담아 오소서. ☞ 용어 해설 √ 살날이(運矢臺) : 무겁에서 주운 화살을 사대까지 보내는 기구.
산뽕나무 베어다 활짱을 만들고 휨세 좋은 대(竹)는 잘 켜서 아랫장 윗장에다 붙이고 물소 뿔 덧대어 쇠줄로 갈고 다시 또 다듬고 소 한마리 두 덩이 쇠심줄. 어지간히 질긴 놈을 한 올씩 찢어내어 일곱겹을 입혀내고 활짱 안팎엔 자작나무 껍질 말려 붙이고 각궁(角弓) 한 자루에 올라탄 소 세 마리를 민어부레풀이 힘겹게 붙들고 있구나. ☞ 용어 해설 √ 각궁(角弓) : 전시 수렵용과 연악 습사용(嘗樂習射用)의 2가지가 있으며 전시 수렵용의 재료는 뽕나무, 물소뿔, 소힘줄, 실, 민어부레풀, 옷칠 등의 6가지 재료를 사용하며 연악 습사용은 뽕나무, 소힘줄, 소뿔, 민어부레풀, 대나무, 화피(樺皮) 등의 7가지 재료로 만듦. 후궁(帿弓), 장궁(長弓)이라고도 하며 힘의 세기에 따라 강궁(强弓), 실중력(實中力),..
한 순 내고 숨 돌리며 한천각(閑天閣)에 앉아서 화살을 기다린다. 한천각에 앉아 바라보는 목멱산(木覓山) 기둥과 대들보 사이로 박제(剝製)된 과거와 공존(共存)하는 현재가 가감 없이 투영(投影)된다. 능선을 따라 불쑥 튀어나온 감투바위와 가파르게 달아나는 샛길 그 길 옆에 걸 터 앉은 바위군락 살짝 고개를 들면 마천루(摩天樓)와 맞닿은 하늘아래로 촌스런 과녁 삼형제가 주인인 양 똬리를 틀고 무겁을 차지하고 있다. ☞ 용어 해설 √ 한천각(閑天閣): 황학정 내에 있는 작은 정자. √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옛 말. 한천각에서 보면 남산이 한 눈에 보인다. √ 감투바위: 한천각 앞에 튀어 나와 있는 바위. √ 무겁: 개자리와 같은 말. √ 개자리 : 과녁 앞에 웅덩이 등을 파고 사람이 들어앉아서 살의 적중..
큰 키 때문에 구부정해 보여도 너른 어깨로 한 팔 가득 벌리면 활 터를 한 아름에 안을 듯......, 해학(諧謔)과 익살이 가득 찬 미소를 가진 영원한 소년 칼 자이링거. 푸른 눈의 붉은 열정 활의 원류(源流)를 찾아 떠난 머나먼 여정 온 세상을 돌아 마침내 그대가 이 땅에서 찾은 활의 정수(精髓)가 허위(虛僞)가 없는 온새미로 이길......., 저 너머 푸른 과녁을 노려 보던 빛나던 눈동자엔 오롯이 활 사랑이 서려있네. 두터운 팔뚝으로 당겼던 강궁(强弓)의 시위도 그대의 열정보다 팽팽하진 않으리......, 그대 사랑했던 활로 인해 그대 좋아했던 이 곳에 왔고 이 땅에 흩뿌려진 그 뜨거운 열정은 안으로 수렴되어 다시 세계로......, 당신을 닮은 큰 걸음으로 성큼 나아갈 수 있도록 이제..
살면서 누군가에게 모범을 보이겠다는 것은 스스로 멍에를 짊어 지는 어리석은 일 이다. 교육(敎育)이란 혼과 혼의 만남이요 인격과 인격의 부딪힘이다. 어리석지만 숭고(崇高)한 사명(使命)을 받아 들이는 것도 선택 받은 자의 숙명과도 같은 것. 기술(技術)을 가르치기 보다 정도(正道)를 알려 주는 것. 뭔가를 지시하기 보다 모범으로 솔선(率先 )하는 것. 남은 생애도 누군가에게 본(本)이 되어야 한다 는 것 은 참으로 무섭고 힘겨운 일이다.
줏대 없는 풍기(風旗)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마라! 자리를 틀었으면 살이 쏟아지든 말든 옴짝달싹 과녁마냥 움켜쥐고 버티고 서라! 이마 마주 보고 선 과녁 활짱과 시위가 멀어질 때 견갑골은 등 뒤에서 부딪히고 등힘이 돌아 나와 가슴팍에서 머물 때 표(標)가 성큼 들어와도 한번 더 굳히고 발시(發矢)하라! 몸으로 쏘지 말고 마음으로 쏴라! 기교(技巧)로 쏘지 말고 궁체(弓體)로 쏴라! 힘 보다는 기(氣)로 쏘고 버티고 쪼으고 기어이 연삽하게 내라! ☞ 용어 해설 √ 궁체(弓體): 활 쏘는 자세. √ 풍기(風旗) : 활터에서 바람을 방향을 알기 위해 높이 매단 깃발. √ 시위: 활에 화살을 꽂아 잡아 당기는 줄. √ 등 힘: 활잡은 줌손의 손목으로부터 어깨까지 손등과 팔등의 힘이 균일하게 뻗는힘. √ 연삽하다:..
수줍은 달이 해와 별 사이로 숨는 날 활 꾼은 부린 활을 얹으며 점화(點火)된 열기를 느낀다. 잔칫집 마당에 쳐진 차일(遮日)위로 쏟아진 햇살이 안쓰러울 무렵 시관의 목소리보다 관중(貫中) 소리가 더 높고, 파란 가을하늘보다 살고가 더 낮다. 앞마당을 가득 메운 맛깔스런 음식과 잔치를 준비한 삭주(朔主)들의 정성이 활터의 긴장감을 어루만질 때 트집난 활을 도지개로 채우듯 맞추고 싶은 욕심도 그렇게 또 사그러 진다. 석양이 무겁을 비추고 정원 등 아래 낮게 깔린 테너의 노래 소리 뜨락은 이미 사람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삭회를 비집어 활터의 미래를 본다. ☞ 용어 해설 √ 삭회(朔會): 음력 초하룻날과 그믐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 황학정은 월례회를 삭회라 부르며 자랑스럽고 오랜 전통을 가진 활터의 ..
비 오는 날엔 활 쏘러 가고 싶다. 기왕이면 걸어서 가고 싶다. 시장 통을 헤집고 숲길을 건너서 구중심처(九重沈處) 숨어있는 두루미 활터(黃鶴亭). 발걸음은 아직 종로도서관인데 마음은 이미 과녁에 꽂혀있다. 오늬가 시위를 먹기도 전에....., 활 쏘러 가는 길은 주저함이 없다. 친구 넘 한잔 하자는 소리도 거짓부렁 바쁘다고 손사래를 친다. 아무리 바빠도 쏜 살 보다 바쁠까? 발 디딤은 아직 설 자리(射臺)인데 눈치는 이미 무겁터를 넘었다. 과녁이 살을 먹기도 전에....., 몇 순 쏘고 모른 척 헐레벌떡 달려온 내 얼굴엔 비난의 화살이 박힌다.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도 활 쏘러 가고 싶고 바람 부는 날도, 눈 오는 날도 ......, 아니 그냥 맨날 활 쏘러 가고 싶다. ☞ 용어 해설 √ 오늬: 화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