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새벽 습사.. 본문
꼭두새벽 어스름한 계단길 너머
반갑게 불을 밝힌 사우회관
곱은 손 호호 불며
서릿발 같은 설자리에 선다.
홍심(紅心)을 닮은 빠알간 해가
마천루를 비집고 나와
한껏 솟구쳐 오른 살대를
어루만지는 순간
늘씬한 몸매가 오롯이 드러난다.
홍심으로 돌진하는 붉은 촉
내 의지가 과녁과 만나는 찰라
지난밤 나를 괴롭혔던 잡념도
산산히 부서져 개자리에 흩날린다.
과녁 앞에 널부러진 살[矢]
설자리 위에서 은혜 받은 내 마음.
아침 고요를 깨우는
하나의 화두가 되고……
한겨울 된바람을 뚫고
질척이는 연전길을 다녀온 후
설자리에 서서
다시 무게중심을 낮춘다.

※ 시 해설
한국에서 마천루를 병풍처럼 배경으로 둔 활터는 황학정밖에 없습니다. 가끔 휴일 새벽에 습사할 때면, 남들은 모를 둣한 저만의 은밀한 재미가 있습니다. 동틀 무렵 만작 후 발시를 하면 그 화살이 정점에 달할 때 햇빛에 비쳐 0.5초도 안 될 만큼 찰나의 순간 살대가 오롯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이 현상은 왼쪽에 있는 높은 언덕이 햇빛을 막아서고 있다가 화살이 2/3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햇빛에 노출되면서 반짝거리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다가 “따악!” 하는 관중 소리를 들으면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어쩌면 저마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심신 수련을 하는 것이 활쏘기의 정수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용어해설
☞ 서릿발 : 땅속의 물이 얼어 기둥 모양으로 솟아오른 것. 또는 그것이 뻗는 기운.
☞ 마천루(摩天樓) :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아주 높은 고층 건물을 뜻한다.
☞ 홍심(紅心) : 과녁에서 붉은 칠을 한 동그란 부분.
☞ 화두(話頭) : 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를 이르는 말.
☞ 연전길 (揀箭길) : 무겁에 떨어진 화살을 주우러 다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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