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國弓), 그 치명적인 유혹..
[1] 범아귀.. 본문
우리말에 범아귀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사이를 콕 찝어 범아귀(虎口)라고 한다.
이 글은 손의 특정 부위를 지칭하면서도 손과는 전혀 상관없이 범아귀(虎口)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활에서 찾아 보기 위해 씌여진 가설이다.
다시말해서 현대에 이르러 순 우리말이 많이 사라진 지금 그나마 순 우리말이 많이 남아 있는 활 문화에서 범아귀의 유래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손뼉(손바닥과 손가락을 합친 전체 바닥)이나 손샅(손가락 사이를 나타내는 말)처럼 손의 특정부위를 지칭하는 순 우리말이 손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뜬금없이 범아귀로 표현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의 사이가 혹시 활 몸체를 잡는 줌손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 혹은 화살의 오늬가 깍지손 범아귀에 걸쳐서 이런 표현이 유래하지 않았을까 ? 하는 궁금증에서 부터 이 가설은 출발한다.
☞ 편집자주 : 엄밀하게 말하면 범아귀도 4개의 손샅 가운데 하나라고 말 할 수도 있다.또 씨름에서 사용하는 샅바란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끈'이라는 의미이다.
범아귀에 대한 우리 국어사전의 풀이는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의 사이'로 규정하고 있다. 한자어는 말그대로 수호구(手虎口) 즉 손에 있는 호랑이 입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지금도 중국인들은 수호구(手虎口)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the space between the thumb and the forefinger로 풀이될 뿐 범아귀에 대응하는 적절한 영단어는 없는것 같다. 그럼 이 범아귀란 단어의 어원은 무엇일까 ? 왜 엄지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의 사이를 콕 찝어 지칭 해야 했으며 그 곳을 왜 범아귀라고 표현 했을까 ? 우리와 중국어 문화권에 있는 신체특정 부위에 대한 정밀한 표현이 왜 영어나 기타 외국어에는 그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것일까 ?
먼저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뜻풀이 외에 범아귀의 어원이나 기타 유추할 만한 어떠한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다양한 가능성을 열고 추측해야 하며 어원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말을 말 그대로 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단어가 형성되기 전 고대국가의 생활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를 지칭해야 할 이유는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소화가 되지 않을때 소위 '범아귀'의 손가락 뿌리가 맞닿은 부분(정확하게 웃아귀라고 한다-한의학에서는 합곡혈(合谷穴))을 맛사지하거나 침을 놓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침을 놓는 특정 신체부위와 범아귀를 아무리 끼워 맞출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소화의 촉진을 돕는 혈자리 부근과 범아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덧붙여 엄지와 검지사이의 간격이 크고 넓어서 호랑이가 입을 벌린 모양 처럼 생겼다고 해서 범아귀로 불렀다고 해도 뭔가 상상력이 부족하고 설득력이 약하다. 입을 벌린 모양까지는 동의 하겠는데 왜 굳이 범이 입을 벌린 형상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점이다. (늑대나 개가 입을 벌린 모양도 있는데......,)
그렇다면 글이 없던 선사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생활양태에서 굳이 엄지와 검지사이를 지칭해야 하고 또 그 명칭을 범아귀로 표현 할 수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
단연코 활이다. !!
이유인즉, 전통적인 각궁은 표적을 조준하기 위한 별도의 가늠쇠가 없다. 당연히 거리를 측정하거나 탄도를 계산하는 장치가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럼 이런 정밀한 장치도 없이 어떻게 원거리의 표적을 명중시킬수 있었을까 ?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줌손과 화살대가 이루는 각이 가늠쇠 역할을 하고 더불어 평소 궁수의 훈련정도에 따른 거리감각과 외부환경요인을 보정할 수 있는 궁수 개인의 자질을 들 수 있다.
국궁에서 활을 미는 손을 줌손이라고 하고 시위를 당기는 손을 깍지손이라고 한다. 이 활 몸체를 미는 줌손에서 하삼지(下三指)로 잡고 반바닥으로 줌통을 밀어야 하며 엄지와 검지손가락은 활의 몸통을 가볍게 쥐면서 균형을 잡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활 몸체는 범아귀에 걸치게 된다. 당연히 만작을 이루고 이전(離箭) 직전 궁수의 화살은 활과 범아귀 사이를 통해서 발시(發矢)된다.
호구(虎口)의 사전적 의미 즉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란 말 그대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표적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상대의 범아귀에 걸린 화살의 표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매우 위태로운 상태이다. 반대로 사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표적의 목숨은 깍지손의 압력에 달려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상반된 입장의 두 사람이 느끼는 동질감이다. 그만큼 각궁의 명중률을 상호(표적과 사수) 신뢰하고 있었으며 범아귀란 말자체가 사수의 입장에서는 표적을 명중시킬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차 있었으며 표적의 입장에서는 공포에 질렸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과거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제국의 붕괴등 격동의 유럽을 촉발시켰던 훈족의 위력을 단적으로 표현한 기록이 있다. 로마인 시도니우스 아폴리나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훈의 화살은 빗나가는 법이 없으니, 훈이 활을 겨냥하는 자를 애도하노라. 그의 활은 죽음을 가져온다."
알타이어계중 투르크 어족인 훈족의 화살이 주목받는 기록이다.알타이어계라고 하면 만주·퉁구스 어족,몽골 어족, 투르크 어족등 3개 언어집단이 있는데 이 세민족이 사용한 활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우리는 훈족의 가공할 만한 명중률보다 언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한 단어가 특정사물이나 상태를 대표할 수 있는 단어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준거집단의 명백한(절대적인)동의가 필요하다.
예를들어 특정집단에서 매우 특이한 형태 즉 극소수의 백발백중 사수가 이 검지와 엄지로 잡은 활 사이의 화살로 사물을 곧 잘 명중시킨다고 해서 앞으로 우리는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를 범아귀라고 하자라고 제안했다면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동의를 끌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말해서 범아귀란 단어자체는 우리 민족 구성원들 대부분이 활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었으며 대다수가 명궁이었다는 사실을 혀로써 증명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범아귀라는 단어가 신체의 특정한 부위를 일컫는 우리말의 대표단어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 하는 것이 저자의 상상이며 주장이다.
끝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범아귀는 오른손/왼손의 구별이 없는가 ? 라고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선사시대 이전에도 좌궁과 우궁이 있어 별도의 구별이 필요치 않았다. 결국 범아귀의 정확한 정의는 "줌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하겠다.
선사시대란 글이 없던 역사시대 이전을 말한다. 혀는 글 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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